앗싸라비아
딱딱하게 서술형식의 설명문보다 때로는 깊게 고뇌하고 사유의 터널을 몇 번이나 빠져 나와야 하는 고답적인 도서는 지식과 통찰력등을 종합적으로 요구하기에 쉽게 익혀지지 않지만 높은 정상에 올라 한숨을 돌리며 아스라히 펼쳐지는 발아래 풍광과 사물들을 통해 지난 삶의 흔적과 후회 덩어리들,미쳐 생각지 못했던 실타래들이 산정상의 바람을 타고 온몸을 후질근하게 적신 땀이 시원스레 감싸면서 맑고 청량한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듯한 경쾌한 날들을 가끔은 그려보고 때묻은 영혼이 맑게 정화되기를 바랄 때도 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하해와 같은 존재인 어머니는 늘 내 곁에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하게 살아 주기'를 늘 마음 속에 간절히 빌고 또 빈다.그게 부모마음이고 어머니가 자식에게 건네주는 무형의 선물이고 느넓은 자애의 소치이기도 하다.세월은 흘러 엊그제 코흘리개였던 나는 하얀 헝겊으로 만든 학년반,이름을 오른쪽 가슴에 달고 학교 문을 밟았고 어머니는 젊음이 넘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기고 아버지마저 안계신지라 '순망치한'의 영향을 홀로서 감내하고 사시고 있다.그간 6남매를 낳으시고 기르시며 시골 논,밭일에 겨우내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깊은 산 속을 아버지와 함께 몇 날 몇 일을 낫과 톱으로 억척스럽게 땔나무를 이고 지고 집으로 오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멀리서 오는 모습이 조그맣게 꿈틀거리는 개미의 모습에서 집 근처로 당도할 무렵이면 온몸에 땀으로 멱을 감고 대문에 들어서면 "애따" 하시며 땔나무를 철썩 헛간에 내려 놓으시던 농부의 딸이었고 농부로 가업을 이어가던 종가집에서 몇 십년을 일만 뼈빠지게 하시던 어머니에게 '앗싸라비아'를 마음으로 선물해 드리고 싶다.
어머니께서 지내온 간난의 시절과 꼬장꼬장하신 할머니의 비위와 제각각인 6남매의 성장과 교육,술주정꾼 아버지의 뜻을 한몸으로 받아오면서도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때 맹세했던 언약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 눈이 오고 빗발이 내리치고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13년간 수발을 미운정 하나로 지켜 오신 어머니는 맑은 날 보다는 먹구름과 비바람,찬바람이 가득했던 시절을 보내셨던 또순이와 같은 어머니께서 좋은 생각,즐거웠고 고마우며 자식들에게 과분하게 전해 주셨던 유무형의 값진 선물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 멋진 도서를 혼자 보기 아까워 읽고 어머니께 보내 드리고 싶다.
모든 장면이 사람사는 냄새로 가득하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진솔하고도 솔직한 마음을 마음 편하게 누군가에게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늘어 놓고 싶은 '앗싸라비아'는 저자의 멋진 문체만큼 내게 전해오는 따뜻하고도 자애로운 어머니 품 속으로 파묻히는 느낌을 '앗싸라비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되고 있고 쫓기듯 살아가는 나와 너는 한숨 돌리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며 편안하게 다가오기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어둠 아래
천진난만하게 자라나고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고사리같은 어린 아이들이 유괴 및 성폭행으로 살해를 당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과 사회의 불안과 공포감은 한국뿐만이 아닌 전세계적인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또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만 범죄를 저지르고 성폭행을 일삼는 자들은 그들의 뇌 구조가 과연 어떠한지도 심리학적인 면에서 궁금하기만할 따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어둠'에서 풍겨져 오는 으시시한 공포감 및 전율감은 범인을 찾기 위해 탐문 조사를 하고 추적하고 있는 수사본부 형사반원들 및 살인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물에서 한층 수위가 높아지며 죽는 자는 말이 없고 죽이는 자는 유유히 증거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치안 부재 및 수사의 한계마저 나오게 되며 주인고 나가세의 등장으로 수사에 대한 기대와 그의 추적과 탐문 과정 및 발언등에서 미묘한 신경전과 함께 사건사고의 전말은 미궁으로 빠졌다가 활기를 띠었다가 엎치락 뒤치락하기를 반복하면서 긴박감과 스릴감,인간의 원죄의식등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일본의 유괴사건 및 사체 유기등을 접할 때마다 늘 소름이 돋는다.그만큼 잔인하고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들의 악랄함과 뻔뻔스러움을 알기 때문이며 그들은 자신의 변명거리를 주구장창 늘어 놓으며 범행당시의 정상참작이라는 말도 안되는 구실로 죽어야 마땅한데 몇 십년 콩밥 먹다 다시 출소하고 또 다시 어린이들을 타겟삼아 살인행각을 하면서 인생 전반을 사회의 소외층으로 전락하고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나가세의 여동생 '에미'가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처참하게 죽으면서 자신은 사회의 정의와 범죄자를 소탕하는 형사의 길로 우연찮게 발을 들여 놓게 되는데 그는 후지사와라는 고참 형사의 기대를 안고 형사반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괴범들이 하나 둘씩 잔인하게 욕조 및 호텔에서 죽어가고 그들의 죽음을 당하는 동영상물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수사대원들을 아연실색케 하며 이는 사회안전망이 허술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나가세는 마음 속으로 자신도 상송이 되겠다는 마음을 품으며 동료 및 상사들에게 눈총을 먹게 되면서 나가세 자신이 과연 형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를 자문자답한다.
나이토,키무라,이토라는 유괴범들이 '등불의 마을'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형을 살았음을 나카무라 수사대원들의 탐문에 의해 밝혀지게 되지만 정작 나가세의 동생(에미)를 죽인 범인은 나타나지를 않고 나가세 앞으로 보내져 온 문자 및 전화가 걸려오는데 자칭 '상송'이라고 밝히면서 나가세는 과연 그를 만나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지만 결국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권총을 들고 남자가 묵고 있는 곳에 당도하며 그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가세의 동생 에미를 죽인 코사카라는 유괴범이었음이 밝혀지게 되고 나가세는 코사카를 동생의 원혼을 갚는 차원에서 죽이게 되고 나가세는 형사직을 그만 두면서 사법과 정의라는 사회의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판결은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는 없다.하물며 연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일반인과 격리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그들의 본바탕이 어찌되었든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행위로 말미암아 유족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응어리와 심적 고통,삶의 무의미등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이 글에서처럼 유괴범들을 찾아내 그들을 죽이는 행위 역시 살인의 악순환일 뿐이므로 입법과 사법차원에서 무엇이 가장 옳은 길인지를 저울에 올려 놓고 심사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외삼촌
일제강점기와 해방,한국 전쟁은 현대사에 있어 한국인에게 사상과 이념,국력의 실체,개인적인 삶의 굴곡등으로 점철되어 왔다.특히 일제 강점기시에는 대부분의 민간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만주로 떠나고 일본으로 몸을 옮기는등 수난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힘들여 농사지어 놓으면 일본인들이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걷어 가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는 말이 실질적으로 들려 온다.지주와 일본세력에 빌붙어 살았던 자들이야 먹고 사는 수난을 모르고 살아겠지만 태반의 민간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먹고 지내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 이주인씨는 재일동포 2세로서 그의 혈육이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어려웠던 시절과 한국 전쟁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간 혈육들의 삶과 가족애,조국애등을 서사적이고도 인간미가 넘치는 에피소드, 체제와 이념으로 스러져간 한국 전쟁의 동족상잔을 실감나게 그려 낸 점이 오래도록 남을거 같다.또한 일본과 한국의 지리,산세,지명,(한국전쟁시)이념과 체제의 희생양인 한반도의 실정과 빨치산등으로 알려진 공산당원의 가입으로 체제를 연장하려 했던 이승만정권의 민간인 대량학살,국민보도 연맹등은 지난 역사의 과정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의 주인공 소지로(윤종래) 집안과 부인 요코의 집안의 얘기를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소지로는 둘째 아들로서 큰 형과 어머니가 주신 뱃삯만 받고 혈혈단신 도일을 하게 된다.그는 남자다운 기질에 과묵하면서도 가족을 세세히 챙기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며 요코는 남동생 고로를 끔직히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은 누나이며 고로는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이다.고로의 아버지는 염전 사업을 하면서 가계를 꾸려가는데 해방과 더불어 부모님과 함께 귀국을 하게 되고 '국가의 재건'에 힘쓰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다.소지로는 군수공장에서 사장으로 일하는등 자수성가를 하게 되고 아들을 낳으려다 내리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원하던 '다다하루'라는 남아를 얻으며 삶의 희망과 일에 대한 신념이 커지면서 내외적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거 같은데 고국에서는 힘없는 조선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분이 되고 이념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소지로는 본가와 처남의 안부가 걱정이 되면서 그의 회사 부하들과 밀항의 계획을 짜고 초계정과 풍랑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적적으로 자기가 살던 고향의 부모님과 처남,장인,장모와 해후하게 된다.당시엔 젊은이들을 전선에 투입하기 위해 징용 담당자들이 가가호호를 다니며 색출하게 된다.마침 고로가 사는 동네에서 청년들이 군을 피하기 위해 동굴로 숨게 되는데 지나가던 북괴군에 의해 사살이 되지만 고로만 살아남게 되고 동네 이 씨 집안에선 고로를 첩자로 소문을 내고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 하는데 고로의 부모는 결혼하지 않은 외아들을 살리기 위해 뒷간에 임시 닭장을 설치하고 웅덩이만하게 흙을 파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받아 먹으며 목숨을 유지해 나간다.
소지로는 처남 고로가 이렇게 된 마당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던중 일본에서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백동림'사단장을 주지스님으로부터 소개받고 소지로는 고로와 함께 산과 내,개울,아슬아슬한 군사도로,군트럭을 이용하여 백동림 사단장을 만나고 고로를 대한의 건아로서 멋진 군인으로 복무해 주기를 부탁하고 그는 다시 오던 길을 되밟아 고향과 처가에 당도하고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믿음을 보여 주고 고로가 군대 생활 잘 하고 무사히 만기 제대하여 부모님 모시고 잘 살기를 바라며 소지로가 살던 미타지로 돌아가게 되고 그를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의 열렬한 환대 속에 묻히게 된다.시대적으로 어렵고 먹기 살기 위해 혈혈단신했던 소지로의 인생과 대조적인 고로의 삶을 다다하루라는 주인공은 아마도 저자가 아닐까 한다.그가 듣고 자란 부모님 세대의 고초와 어머니를 통해 들은 외가의 삶을 실감나게 서사적으로 전개했다는 점과 한국 전쟁을 기회로 일본은 군수물자등을 통해 경제적 반사 이익과 성장을 거두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또한 어려웠던 시절 매형과 처남이라는 가족사를 통해 끈끈하고도 의리 넘치며 훈훈한 인간 관계의 맥을 잘 살렸다는 점도 이 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