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간
'3초간'이라는 단어가 강렬한 임팩트로 작용한다.짧은 섬광같은 시간에 행불행이 교차할 수도 있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행불행을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에 평소 생활 습관,언행,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그만큼 중요한 작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특히 현대사회는 인간 관계의 연결 고리가 지속되고 있고 복잡다단하며 긴장과 갈등 또한 늘 몸속에 달고 다닐 수 밖에 없다 보니 사소한 말 한마디,상대방에게 내비치는 행동,선후천적으로 자신을 내세울 인간성등은 3초간에 결정이 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행운이 따를 수도 있고 불행이 따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거 같다.
인간의 뇌와 마음은 늘 오욕칠정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달고 다닌다.일과 삶 속에선 예행 연습이 없기에 그간의 누적된 풍부한 경험과 날카로운 지혜를 상황에 적합하게 임기응변할 수 있는 기민성과 통찰력을 갖추지 않으면 한갖 본능적인 존재로밖에 내비치고 순간 순간 다가오는 짜증과 갈등,분노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마음의 병을 자초하며 흔히 말하는 '공황장애증'등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거 같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도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고 이해타산 따지며 가족과 지인,주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살아가면서 짜증과 분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겸허한 자세를 갖추어 나간다면 어느 정도는 짧은 순간의 마음의 격정을 해소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데,실제 현장에서 겪는 짜증과 분노거리는 평소 마음이 강직하고 초탈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언쟁과 분쟁으로 이어지고 언제가는 터지고 말 '뇌관'과 같은 경우가 많다.
집안에서 부모의 언행과 아이들의 생활 습관,학습습관,연인들끼리의 사랑과 배신,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거래처간의 이해 타산,지시의 불합리,상사의 권위주의적이며 비인간적인 업무 행태등에서 '짜증과 분노'는 늘 보여지고 이를 어떻게 잘 이겨낼지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3초정도 생각해 보고 그 자리에서는 수용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거 같다.그렇지 않고 바로 들이대고 이견을 내세우며 '나 잘 났다'는 식으로 나오면 결국 일도 안되고 싸움거리로 비화가 되며 주위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거리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성격이든 덤덤하고 무뚝뚝한 성격이든 아니면 늘 못마땅한 모습을 보이는 성격이든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짜증과 분노가 일어나면 오히려 짜증과 분노를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짜증과 분노를 너무 삭히다 보면 울화증 및 각종 질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자신만의 해소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거 같다.짜증과 분노거리를 잊어버리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가 있으며 정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윗선과 직접 면담 요청을 하여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찾는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정사,일터에서의 치열한 생존 꾸리기,경쟁 속에서 삶이 각박하게 돌아가고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에게 비수가 되어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가고 인간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와 국가는 바람 한 점 없는 모래밭이 펼쳐질 것이다.먹구름 뒤의 청량한 빗줄기는 온갖 분진을 일소해 주듯 3초간의 겸허한 자세와 미소는 나와 너의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리라 믿는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이 작품은 근래 읽은 한국 소설 중에서 쉽게 읽혀 가지만 말그대로 낯설게 다가온다.늘 보고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가족과 낯익은 지인들이 환영처럼 다가오기도 하며 낯이 익었는가 싶으면 낯이 선 사람으로 둔갑하는거 마냥 느껴지고 여운이 남는다.작가께서 병상에서 쓴 작품이고 지나온 삶을 관조하고 삶을 초탈의 경지에서 사람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등장 인물인 K라는 사람을 통해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던 벌거벗은 자연인의 모습으로 그려놓았던 점과 약간의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결혼 15년차의 중년 남자 K는 아내와 딸과 사는 평범한 가장으로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의 행각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풀어 나간다.늘상 자명종이 제 시간에 울리는 소리는 자신이 시간을 맞춰 놓았기에 울릴 것이고 테이프가 끊어질 정도로 마신 술로 인사불성이 된다. 자신이 아끼던 핸드폰이 분실되고 사건은 점차 점입가경으로 빠지게 되는데 핸드폰을 습득한 사람이 "이 핸드폰은 영화관에서 잃어 버렸다"기에 K는 최대한의 기억을 찾으려 하지만 애매하게 친구 H의 절친녀를 의심한다.또한 어렵게 찾은 누나의 남편이 장인일줄이야 누가 알았겠으며 누나의 도드라진 몸 속을 흘겨 보면서 욕정을 느낀다.누나의 남편이었던 H교수는 누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죽은 것을 알면서도 누나편에 아들에게 옷가지를 챙겨주고 사랑한다는 말까지 전해주라는등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K자신외에 자신을 넘보는 K2가 등장하고 똑같은 인물이 2명이나 등장하는등 투명 인간의 요소를 내보이며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마저 느끼게 되었다.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오류와 잘못을 계도하기라도 하듯 K는 3일간의 추스리지 못하는 방황과 번민,욕정으로 가득찼던 내면의 원죄의식을 깨달아 가고 가장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한다는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께서 투병 생활 속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과 카오스적인 정체되고 혼란스러운 인간의 다양한 생각,감정등을 K라는 평범한 인물을 내세워 원죄의식,혼돈,환상적인 요소 위에 순수하고 자연인으로 되돌아 가자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특히 암과의 사투를 벌이는 작가의 마음 속에는 인간이 먼지와 진흙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거 같다.혼란스러운 세속 속에서 K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면서 태초의 모습을 지닌 인간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는거 같다.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20세기에 들어서 2번의 세계 대전 속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및 민족주의의 우월성을 부르짖다 비극적인 종언을 고하고 새로이 헤쳐모여식으로 이념과 체제가 짜여지면서 현대에 이르면서 신자본주의라는 극도의 국가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결국 약육강식의 생존 논리가 20세기와 지금과 비교하면 영토 확장,민족주의의 우월성등으로 총과 칼을 휘두른 무(武)의 철혈 정책이었다면 현대는 지구의 환경 오염과 기후 온난화,생태계 파괴등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연을 거스르는 정책이 결국엔 인류가 자연의 대재앙이라는 역습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예측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맹위를 떨치고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작전이 성공적으로 치달으면서 독일은 아리아라는 그들 민족의 우월성과 히틀러라는 인물의 영웅적이고 기회주의자에 의해 떠돌이 유대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극이 독일을 비롯하여 폴란드,소련등지에서 자행되고 배가 고파 인육을 씹어 먹는등 참극의 연출이 레비라는 작가에 의해 서사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실제 그가 그 무시무시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환을 맞이하여 그때 겪었던 유대인의 비극과 참상을 빨치산 내지 레지스탕스라는 저항 부대를 내세워 인간은 왜 살아야 하고 삶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시간이 되었다.
역사 이래 전쟁은 이긴 자든 진 자든 후유증이 심각했음을 알게 되는데 특히 제국주의의 영토 확장정책과 피제국주의의 백성들에게 자행한대학살 정책은 일국의 심각한 트라우마 및 적개심을 낳게 하고 국가간 원만한 관계개선은 겉으로만 치유되는 모양새를 띠지만 속마음은 언젠가는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게 마련이다.역사가 말해주는 독일의 유태인 홀로코스트,루꺼우챠오사건으로 비화된 중일전쟁과 남경 대학살,인체해부(마루타) 사건,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대학살사건등이 제국주의의 오만한 정책과 영웅주의의가 빚은 결과물이고 희생자의 대다수는 선량한 일반인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유대인 빨치산 부대의 주요 인물 멘델과 레오니르는 러시아 남부 벨로루스,우크라이나를 떠돌며 나치 근위대 및 그 세력들을 잡고 처단하며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에 항거의 깃발을 내세운 전위대원들인데 노볼셸키 빨치산 수도원의 도브 원장,율리빈 대장,게달레대장,시슬,라인등이 강과 숲과 습지,평원등을 이동하면서 때론 나치의 이동을 막기 위해 보급품 수송 열차를 폭파하기도 하고 나치대원들과 불심 마추침에 총격전이 이어지며 섬광같은 불바다와 귀가 찢어지는 총탄 세례등이 공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나도 부모님에게 들은 6.25전쟁의 참상과 잠을 자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 흙벽담을 뚫고 날아갔다는 섬득한 얘기,군에 갔다 온다던 오빠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전쟁이 낳은 희생은 근본적으로 참다운 인간의 삶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2차세계대전이 말로를 걸으면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암살이 되고 히틀러는 궁지에 몰려 결국 자살을 함으로써 독일의 유대인 학살극은 끝을 내게 되고 빨치산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길을 향해 떠나게 된다.
이념과 체제 아래에서 민족의 우월성과 영토 확장을 도모했던 히틀러 및 스탈린의 제국주의의 음모는 사필귀정으로 끝나게 된다.작가 또한 유대인으로서 게토,아우슈비츠,카틴숲등의 유대인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으로서 또는 살아있다는 자체가 같은 동족에 대한 회한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른다.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광기,잔혹성,살아남기 위해 나치에 빌붙어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의 이중성등을 통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